안양법무법인 마르잔, 마흐사, 나르게스를 기억하며 [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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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의 이란 혁명은 부패한 왕조를 무너뜨렸지만, 그 자리엔 억압적인 신권 통치 체제가 들어섰다. 펑크록을 사랑하는 소녀 마르잔은 이제 차도르를 입어야 했고, 젊음과 자유가 거침없을수록 수많은 고통과 배반에 직면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할머니가 있었다. 55년 전 이혼을 감행하고, 브래지어 속에 재스민꽃을 품고 다니던 할머니는, 비겁한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한 손녀에게 호통치며 말한다. “방법은 있어. 방법은 항상 있는 거야.” 이후 이란은 나에게, 유머와 낙관, 정치적 단호함을 동시에 지닌 할머니들이 딸, 손녀와 폭력적인 역사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세계로 남았다.
2022년 가을, 당시 22세의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부적절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뒤 일주일 만에 의문사했다. 당국의 발표는 심장마비였다. “‘탁’ 하고 쳤더니 ‘억’ 하고 죽었다”는 이 해명에 분노한 수많은 여성이 장례식에서 히잡을 벗어 던지며 “잔, 젠데기, 아자디(여성, 생명, 자유)”를 외쳤다. 그 시위에서 17세의 한 소녀가 질문한다. “무엇을 입을지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하나요? 우리의 머리카락이 그렇게도 치명적인가요?”
사실 코란의 이름으로 강요되는 히잡은 1970년대 유신정권이 미풍양속의 이름으로 미니스커트 단속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신앙과 전통의 문제라기보다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의 문제다. 주디스 버틀러가 지적하듯,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권위주의적 권력은 규범을 가시화하고, 위반을 처벌하며, 사회 전반에 공포를 확산시킨다. 따라서 젠더폭력은 여성 개인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보내는 정치적 메시지다. 그래서 젠더폭력에 대한 저항은 언제나 ‘여성 문제’를 넘어선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향한 가장 오래된 투쟁이다.
2025년 12월 말, 경제 붕괴에 항의하는 바자르 상인들로부터 다시 시위가 시작되었다. 이번엔 “1979년 이후 최악의 유혈 사태”가 초래되었다고 한다. 망명한 여성들이 최고지도자의 사진을 불태우고, 축구 스타들이 골 세리머니를 거부하며 ‘침묵의 저항’을 잇고 있지만, 인터넷이 차단되고 모든 메신저가 통제된 상황에서 내부의 진실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이 와중에 팔레비 왕조의 후손과 미국이 각자 대안을 자처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란 민중은 스스로를 위해 투쟁한다.
그리고 그 최전선에 13번 체포되고, 31년의 징역형과 154대의 채찍형을 당한 나르게스 모하마디가 있다. 2023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 그녀는 악명 높은 테헤란 에빈 감옥에 갇혀서도 다른 정치범 여성들과 연대해 구호를 외치고, 성폭력과 백색고문의 실태를 폭로해왔다. 극단적 상황 속에서도 ‘말하는 몸’ ‘기록하는 증언’을 조직해내는 그녀의 존재는, 마치 스크린 속 마르잔이 현실로 걸어 나와 “방법은 항상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듯하다. 그녀 역시 지금은 생사를 알 수 없다고 한다.
“거리에서 춤추기 위하여, 평범한 삶에 대한 갈망을 위하여.” 2022년 시위 당시 만들어진 노래 ‘바라예(Baraye·~을 위하여)’의 가사다. 밴드 ‘콜드플레이’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공연 때 이 노래를 부르며 “자유를 위해 싸우는 이란의 모든 용감한 젊은이들에게 우리의 사랑과 지지를 온 마음을 다해 보낸다”고 말했다. 나는 이란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 속 보리수 씨앗처럼 폭압적인 권력을 파괴할 씨앗이 된 마르잔, 마흐사, 나르게스를 기억한다. 그리고 마음만은 콜드플레이 못지않은 간절함으로 지금 투쟁 중인 이란의 모든 시민에게 사랑과 지지를 보낸다. 잔, 젠데기, 아자디!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 명품의 사전적 정의다. 비싼 만큼 내구성이 좋고, 그래서 오래 쓸 것이라는 기대가 따라온다. 그러나 이제 명품에 따라붙던 통념이 희미해지는 시대가 왔다. 수백만원대 옷의 단추는 사자마자 떨어지고, 천만원이 넘는 가방의 버튼은 열자마자 고장이 난다. 과연 해외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사전적 뜻 ‘명품’이라 부를 수 있을까.
명품 품질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미국 인플루언서 위즈덤 케이는 지난해 이탈리아 명품 미우미우에서 1만8000달러(약 2650만원)어치 옷을 구매해 후기 영상을 찍다가 말을 잇지 못했다. 데님 조끼의 금색 단추가 포장을 풀자마자 후두둑 떨어진 것. 조끼 제품은 국내 편집숍에서 3~400만원대에 팔리는 고가품이었다. 설상가상 함께 구매한 스웨터의 지퍼는 처음부터 고장 나 있었다. 사흘 뒤 옷을 교환했지만 다시 받은 조끼 단추도 바로 떨어져 버렸고, ‘언박싱’ 영상은 저품질 인증 영상이 돼 버렸다.
이런 경험담은 SNS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중국계 미국인 패션 크리에이터 그레이스 장은 7000달러(약 1030만원)짜리 샤넬 플랩백의 잠금 버튼이 고장 나고, 가죽 가장자리 코팅이 벗겨졌다는 후기 영상을 SNS에 공유했다. 레딧 등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새로 산 고가 브랜드 제품의 하자를 토로하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아예 해외 온라인 검색창에는 ‘샤넬 고장’과 관련해 가죽 박리, 잠금장치 불량, 마감 불량 같은 키워드가 따라붙을 정도다.
결함 논란은 명품이 오랫동안 내세워온 핵심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명품이 비싼 이유는 ‘장인정신’ 서사에 있다. 에르메스나 루이비통의 경우 가죽을 일일이 선별하고 숙성 과정을 거친 뒤 장인 한 명이 18~40시간에 걸려 재단, 바느질, 잠금장치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샤넬도 과거엔 트위드 직조, 자수·깃털 장식, 가죽 체인 조립 등 공정을 각 분야 공방이 나눠 맡았다. 장인의 노동을 임금으로 환산하면 고가의 가격을 수긍할 만했다. 유럽 숙련 가죽 장인의 시간당 인건비를 40~80유로(약 6만~12만원)로만 잡아도, 제작에 25시간이 걸리는 가방 한 개의 순수 노동비는 1000~2000유로(약 150만~300만원)에 달한다. 여기에 고급 가죽 원자재, 소량 생산에 따른 공정 비용, 품질 검사와 애프터서비스 비용이 더해지는 구조다.
어쩌다 내로라하는 장인들이 만든 럭셔리 브랜드 제품 품질이 패스트 패션보다 못한 상태로 전락했을까. 전문가들은 그 배경을 명품 산업의 기업화와 주주 자본주의에서 찾는다. 고가 브랜드는 상장과 인수·합병을 거치며 분기마다 실적을 증명해야 하는 대기업이 됐고, 장인 중심의 느린 생산 방식은 더 이상 투자자 기대를 감당할 수 없다. 럭셔리 산업을 취재해 온 저널리스트 다나 토머스는 저서 <디럭스: 명품은 어떻게 빛을 잃었는가>에서 “이탈리아 공장에서 명품 가방과 일반 패션 브랜드 가방이 같은 생산라인에서 찍어내듯 만들어지고 있었다”면서 “제작 방식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로고와 가격표가 바뀌는 순간 ‘명품’이 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CNN도 “요즘 명품 브랜드 다수가 ‘이탈리아산’ 같은 전통 생산지 표기를 유지하면서도, 실제 부품 제작과 조립은 저임금 국가의 하청 공장으로 분산하고 있다”고 짚었다. 원가 절감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공정부터 시작됐다. 안감을 생략하거나, 밑단을 접어 박음질을 생략하고, 천연 가죽 대신 폴리에스터·아크릴 혼방 소재를 쓰는 식이다. 명품 품질 전문가 태너 레더스타인은 CNN에 “최근 명품 제품은 과거보다 제작 방식이 단순하고, 마감도 덜 장인적이며, 대량 생산에 맞춰 설계됐다”고 분석했다.
품질 논란에도 럭셔리 브랜드 제품 가격은 천정부지 치솟고 있다. 올 초 샤넬은 대표 모델 ‘클래식 맥시’ 핸드백 가격을 2033만원으로 올렸다. 1년 전 가격(1892만원)에서 약 7.4% 인상이다. 에르메스의 인기 가방 ‘피코탄’ 가격도 지난해 517만원에서 올 초 545만원으로 약 5.4% 상승했다. 롤렉스·IWC·위블로·태그호이어 같은 시계 브랜드들도 5~8%대 가격 상향 조정에 나섰다.
가격 인상은 일회성도 아니다. 팬데믹 이후 샤넬은 가방·의류·주얼리 전반에서 여러 차례 가격을 올리며 이른바 ‘초고가 전략’을 구사해 왔다. 결과는 역설적이다. 영국 브랜드파이낸스의 ‘2025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가치’ 보고서에서 샤넬의 브랜드 가치는 전년 대비 45% 급증한 379억달러로 집계돼 패션 부문 1위를 차지했다. 1위를 지켜오던 루이비통은 329억달러로 밀려났다. 가격을 가장 공격적으로 올린 브랜드가 도리어 ‘더 잘 나간’ 셈이다.
이 현상은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19세기 말 제시한 ‘과시적 소비’ 개념과 맞아떨어진다. 베블런은 일부 상품이 가격이 오를수록 오히려 더 잘 팔리는 이유를, 그 물건이 실용성보다 ‘지위를 드러내는 신호’로 소비되기 때문이라고 봤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도 상류층의 소비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계층과 타 계층을 구분 짓는 상징적 행위라고 분석했다. 결국 지금의 고가 브랜드 산업은 ‘오래 쓰는 물건’을 파는 산업이라기보다, ‘돈이 많아 보이는 상징’을 유통하는 산업에 가까워졌다. 이쯤 되면 우리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럭셔리’의 사전적 의미는 호화로움, 사치품이다. 장인 정신을 잃은 럭셔리 브랜드는 명품이 아닌, 사치품으로 불러야 맞는 것이 아닐까.
[주간경향] “중국이 우리한테 줄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푸바오라도 줘라’, 제가 그렇게 한 거예요. 푸바오라도 줘라.” 지난 1월 7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방중 기자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중국 측에) 광주 우치동물원에 판다나 한쌍 보내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고도 했다. 한국과 중국의 우호관계를 확인하고, 지역 균형 발전 차원에서 판다 대여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중국 판다 언급은 외교와 정치적 차원에서 나온 것이지만, 이후 전개된 논의는 그보다 더 복잡한 맥락을 담고 있다. 진정으로 동물을 위한 것은 무엇인가, 국가는 동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이 던져진다. 국민적 인기를 끌었던 푸바오의 팬들(일명 ‘푸덕이’)은 푸바오가 중국에 간 뒤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며 푸바오를 데려와 달라고 각종 집회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외교 수단으로 반복돼온 동물 이용의 역사를 멈출 때”라며 판다 대여 반대 입장을 밝혔다. 올해부터 곰 사육과 웅담(곰의 쓸개) 채취가 전면 금지됐지만, 199마리의 사육곰은 여전히 민간 농장의 철창에 갇혀 있는 상태다.
지난 1월 16일 서울 명동 중앙우체국 앞, 푸바오 팬들의 모임인 ‘한국푸바오보호연합’이 집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국민은 다른 판다 아닌 오직 푸바오만 원해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푸바오를 재임대하라!”고 외쳤다. 집회 앞쪽 트럭엔 푸바오 영상이 흐르고, 참가자들이 든 대형 현수막엔 ‘푸바오의 한국 재임대를 간절히 요청한다’는 문구가 한국어와 중국어로 함께 쓰여 있었다. 명동엔 중국대사관이 있고 중국인 관광객이 많다. 지나가던 중국인 관광객들이 푸바오 사진을 손으로 가리키며 휴대전화로 집회 모습을 촬영했다.
푸바오 팬들이 집회를 연 이유는 이 대통령의 중국 판다 대여 요구를 계기로 중국 쓰촨성의 워룽중화자이언트판다원 선수핑기지에서 힘든 삶을 살고 있는 푸바오를 다시 데려와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앞서 푸바오는 죽순을 먹다가 몸을 떨며 경련을 일으키는 듯한 모습의 영상이 웨이보에 올라오면서 건강이상설이 제기된 적이 있다. 푸바오가 걱정돼 시위를 해온 ‘불씨캠페인’의 브리즈(활동명·김모씨)는 “푸바오가 중국에 간 뒤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브리즈는 “푸바오에게 식사를 안 주고 청소도 잘 안 해줬다. 토하고 설사를 하는데도 들여다보지 않는 일들이 있었다”며 “푸바오의 건강 상태와 나이를 봤을 때 번식을 하기 어려운데 쓰촨성 시설은 번식실험을 위한 기지이기 때문에 쓰촨성을 탈출해 좀더 나은 곳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만약 중국에서 푸바오가 잘 지냈다면 이렇게 (집회를) 하지 않을 텐데, 푸바오의 상황이 안 좋으니까 한국으로 데려오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50대 손미선씨는 푸바오가 국내에 있을 땐 푸바오를 잘 몰랐다가 중국 반환 이후 관심을 갖게 된 경우다. 평소 유기견을 키우며 동물에 관심이 많았던 손씨는 푸바오가 중국에서 잘 지내지 못한다는 자료를 접하면서 분노했다고 한다. 손씨는 “판다들이 인공번식에 동원되면서 그렇게 살고 있는 줄은 몰랐다”며 “밥도 먹지 못하고, 시정을 요구해도 (중국 측이)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웃음과 위로를 주던 푸바오가 중국에 가서 맨날 상처를 보이니까 마음이 안 좋고 화가 났다”고 했다.
푸바오는 한국에서 태어난 최초의 판다다. 태어날 당시 197g이었던 분홍 살덩어리가 무럭무럭 자라 100㎏의 거대한 판다가 되기까지 전 국민이 푸바오를 지켜봤다. 푸공주, 용인 푸씨, 김복보 등 애칭이 붙을 정도로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해외에서 태어난 자이언트 판다는 만 4세 전 중국으로 반환해야 한다는 협약에 따라 2024년 4월 중국으로 돌아갔다.
아이돌이 된 동물, 푸바오 팬덤 현상에 대해 좋은 시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푸바오는 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귀엽고 몽글몽글한 짤과 영상으로 인기를 끌었다. 판다의 삶과 복지, 권리보다는 사람을 위한 전시동물로 활용되고, 그 배경에 에버랜드라는 거대 자본의 마케팅이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푸바오보호연합 대표로 활동하는 이수진씨(44)는 이번 재임대 요구를 ‘책임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판다의 삶도 책임지지 못하면서 새로운 판다를 데리고 오는 것은 ‘전시용’밖엔 안 된다”며 “우리가 태어나게 했고, 지켜봤고, 키웠고, (중국에) 가고 나서도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는 푸바오의 삶이 가장 행복했던 장소에서 오랜 기간 머물면서 유지되기를 원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그는 “유행처럼 푸바오를 사랑했다가 지나고 나면 잊어버리고, 새로운 판다를 기다리겠다는 것이야말로 진짜 전시용 판다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번식에 동원되면서 살다가 나이가 들면 비공개 지역으로 가는데, 우리가 나은 삶을 살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 맞지 않나”라고 했다. 판다가 외교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은 반대하지만, 푸바오는 특수한 사례라는 취지다.
브리즈도 “판다가 한국에 와도 결국 중국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판다 외교에 대해 많은 회의감을 가졌다”며 “또 다른 판다가 와서 슬픔이 되풀이되는 것은 원치 않기 때문에 푸바오여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브리즈는 “동물이라도 우리가 힐링을 받고 많은 것을 느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푸바오 덕에 동물복지, 동물권에 대한 관심도 늘었다고 했다. 브리즈는 “그전까지는 판다가 그냥 예쁘고 귀여운 동물, 동물원에 있는 전시 동물이라고 생각했다면, 푸바오가 중국에 간 뒤에는 판다의 복지나 처우,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며 “푸바오를 좋아하면서 곰 보금자리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푸덕이들 중) 동물보호단체에 후원하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이 대통령의 중국 판다 대여 요구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동물자유연대,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등 13개 단체는 지난 1월 14일 ‘판다 임대 계획 당장 철회하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판다 임대는 동물의 대여, 계약의 갱신, 반환이 동물의 이익이나 상태보다 국가 간의 외교관계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에서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다”고 했다. 단체들은 “동물원과 같은 특정 공간에 갇혀 사는 전시동물을 인위적으로 옮긴다는 것은 동물이 평생 나고 자란 세계를 뒤흔드는 일로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심각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며 “그렇기에 동물을 살던 곳에서 옮기는 일은 설사 동물을 위한 의도에서 시도된다고 해도 동물에게 미치는 영향의 정도를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판다와 마찬가지로 멸종위기 동물인 사육곰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한국은 1980년대부터 웅담을 얻기 위해 반달가슴곰을 수입해 좁은 철창에 가두고 길러왔다. 사육곰들은 민간 농가의 뜬장,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이전까지는 동물보호단체들이 자체적으로 곰 보호시설을 만들어 보호하는 수밖에 없었다. 2022년 1월 그 취지가 담긴 ‘곰 사육 종식 협약’이 만들어졌고, 지난해 1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이 시행됐다. 올해부터 곰의 소유, 사육, 증식이 전면 금지됐지만 여전히 199마리는 전국 11개 농장에 남아 있는 상태다. 사육 농가에 대한 처벌은 6개월 유예됐다.
보금자리(생추어리)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현재 구조된 동물이 갈 수 있는 기관은 보호소, 재활센터, 동물원 정도가 있다. 보호소는 임시적 보호, 재활센터는 야생으로 복귀하기 위한 지원, 동물원은 관람을 위해 전시를 하는 곳이다. ‘이용되거나 전시되지 않는, 동물의 평생 안식처’로서의 보금자리는 마땅치 않다. 법에 명확히 보금자리의 개념이 정의돼 있지 않다 보니 향후 공립 보호시설을 만든다고 해도 그 취지에 맞게 운영되지 않을 우려도 있다.
이 문제는 설령 중국 판다가 한국에 온다고 하더라도 발생한다. 판다가 갈 곳으로 지목된 광주 우치동물원 측은 판다 사육이 가능하다고 밝혔지만 평생 돌봄을 위한 시설이 제대로 마련돼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되고, 동물원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관람을 목적으로 하는 공간일 수밖에 없다. 김소희 환경과생명문화재단 이다 이사장은 “판다가 외교의 소재가 된 것은 중국과 한국의 정서적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서였겠지만 기본적으로 살아 있는 동물을 외교적 선물로 주고받아선 안 된다”며 “그 동물을 평생 돌봄 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특히나 그렇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생추어리는 동물이 인간을 위해 복무하지 않고 자기의 삶을 살다가 갈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자, 인간이 동물이 살았던 야생을 훼손하고 동물의 야생성을 빼앗은 것에 대한 책임의 공간”이라며 “정부가 생추어리에 대한 정책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전남 구례군에는 지난해 9월 국내 첫 공립 곰 보호시설이 만들어졌다. 현재 구례 시설에는 민간 농가의 사육시설에서 구조된 곰 24개체가 생활하고 있다. 1마리당 15㎡(4.5평)의 내실, 외부로 나갈 수 있는 약 20평의 중간방사장이 조성돼 있다. 수의사 3명이 상주하며 곰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한다. 정우진 국립공원 야생생물보전원 센터장은 “곰에게 먹이만 주는 단순 보호시설보다는 보금자리 역할을 하고 있다”며 “곰들의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해 다양한 놀이시설을 구축하고,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각 개체의 상황에 맞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곰들이 자연사할 때까지 관리하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아직 개소 4개월여밖에 되지 않았지만 곰 보호시설은 지역사회에도 조금씩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윤주옥 반달곰친구들 상임이사는 “구례의 가게들과 순수익의 1%씩을 모아서 산의 곰들이 외곽으로 나가는 길을 확인하고 표지판을 세우는 등의 활동을 해왔는데, 보금자리의 곰들이 후각을 되살리고 근육을 쓰는 놀이를 할 수 있게 커피박(커피를 추출하고 남은 찌꺼기)을 주는 캠페인도 시작하고 있다”며 “감금된 동물들에 이런 것들이 필요한지 몰랐을 텐데, 작지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라고 했다. 윤 이사는 “반달곰은 무섭고 폭력적이라는 이미지가 많이 소비되지만 사람을 회피하는 성향이 있어서 충돌 가능성이 크지 않고, 지리산 자락의 주민들 인식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며 “함께 사는 식구로서 같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노력하려고 한다”고 했다.
중국의 판다 외교는 국가 간 관계의 부침에 따라 오락가락한다. 최근 중·일관계가 악화하면서 일본 도쿄 우에노동물원에 있는 쌍둥이 자이언트 판다 ‘샤오샤오’와 ‘레이레이’는 중국으로 반환될 예정이다. 반면 중국은 독일과는 새로운 협정을 맺고 판다 2마리를 추가로 보내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푸바오를 사랑하는 분들이 많은 것은 감사한 일이고, 그런 마음을 어떻게 부정하거나 비난할 수가 있겠느냐”며 “다만 외교적으로 주고받은 동물들의 말로가 불행한 것을 그동안 봐왔고, 야생동물은 서식지나 환경이 중요한데 인간의 볼거리를 위해 인공적인 사육공간에 전시동물로 두는 것이 바람직한지 고민을 해보면 좋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판다도 곰이고 사육곰도 곰인데, 정부가 한쪽만 보살피는 듯하고 나머지는 죽든 말든 관심을 갖지 않는 이중적 태도가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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